전기차 중고차 값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높은 프리미엄이 붙던 차량들이 지금은 신차 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흔하다.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배터리 때문에 중고차 값이 형편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배터리 성능 불안’ 중고가 폭락 불렀다
전기차 가격의 핵심은 배터리다. 배터리 잔존 성능을 뜻하는 SOH(State of Health)는 중고차 시세를 좌우한다. 한국의 한 연구에서는 SOH, 충·방전 오류 기록, 절연 상태 등이 중고 전기차 가격과 가장 큰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배터리 성능 보증이 끝난 차량은 거래가 쉽지 않고, 가격도 크게 낮아지는 게 현실이다.
미국선 32% 급락, 영국도 하락세
중고 전기차 가격 하락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시장조사에 따르면 2024년 중고 전기차 가격은 전년 대비 32% 떨어졌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차 가격이 3% 정도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충격적인 수치다.
영국에서도 비슷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중고 전기차 가격이 추가로 28% 더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출처=현대자동차
리스 차량 쏟아지며 공급 과잉
시장에 풀리는 물량도 문제다. 미국에서는 향후 2년간 100만 대가 넘는 리스 차량이 만기를 맞아 중고시장으로 넘어올 예정이다. 이렇게 공급이 급격히 늘어나면 가격이 더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도 리스·렌터카 계약이 끝난 차량들이 몰리면 상황은 비슷해질 수 있다.
신기술과 보조금 변화가 불안 키워
배터리 기술은 매년 진화하고 있다. 주행거리가 길고 충전 속도가 더 빠른 신차들이 나오면서, 중고차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게다가 정부 보조금이 축소되면 신차와 중고차 가격 차이가 줄어들어 중고 전기차 매력이 약해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성능 좋은 신차를 선택하게 된다.
전기차 중고차 값 폭락은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다. 배터리 잔존가치 불확실, 리스 물량 증가, 보조금 축소와 신기술 도입이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보증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가격 하락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고 전기차 시장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배터리 성능 평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책적 안정성도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값싼 전기차’가 아니라, 믿고 살 수 있는 중고 전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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